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Measure · Empty · Abode

누군가의 새 이야기가 시작될 곳을 찾아가는 날이면, 먼저 천천히 둘러봅니다. 몇 걸음쯤 가야 끝에 닿는지, 해는 어느 쪽에서 들어와 어디로 기우는지, 이곳에 살 사람은 아침마다 어느 창가에 서게 될지 하나하나 살펴보지요. 이미 누군가 살던 집이라면,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손때와 시간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. 눈으로는 벽과 땅을 보지만, 마음으로 헤아리는 건 그 안에서 흘러갈 하루랍니다. 그래서 크기를 정하는 기준은 언제나 사람입니다.

그렇게 다 헤아리고 나면, 이번에는 조금씩 덜어냅니다. 채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. 정말 어려운 건 무엇을 남기지 않을지 정하는 일이지요. 벽 하나를 거두면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고, 방 하나를 비우면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갑니다. 비워진 곳은 모자람이 아니라, 아직 오지 않은 삶이 깃들 여백입니다.

그렇게 비워 둔 공간에,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 삶을 채웁니다. 그 사람은 거기서 쉬고, 따뜻한 밥을 먹고, 궂은 날엔 몸을 피하다가, 어느 아침 다시 문을 열고 자기 길을 나서겠지요.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을 품어 줄 때, 그곳은 비로소 거처가 됩니다.

헤아리고, 비우고, 머물게 하는 일.
MEA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.

MEA는 짓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.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작다는 것을 알기에, 땅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려 합니다. 보여 주고 싶은 것, 놓기 아까운 것을 하나씩 내려놓고, 그렇게 남은 빈자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. 비워 낸 그 자리가 지친 누군가 쉬어 갈 수 있는 품이 되는 것, 그것이 MEA가 일하는 방식입니다.

건축가가 공간에 담고 싶은 것은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의 하루입니다. 모자라고 실수하는 날에도 너그럽게 받아 주는 집, 시간에 쫓기지 않고 고요히 쉬어 갈 수 있는 집, 식탁도 마음도 넉넉히 채워지는 집, 비바람 부는 밤에도 든든한 품이 되어 주는 집. 그리고 언젠가 그곳을 나설 때, 그 걸음이 좋은 곳으로 이어지도록 배웅해 주는 집. 열쇠를 건넨 뒤의 날들은 건축가의 손을 떠나지만, 그 시간이 머무는 사람에게 다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짓습니다.

건축가

소장
박준희 KIRA